2014년의 단순한 가을.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랑 윤상을 듣는 가을.

지난 9월엔 

-보다

-희박한 공기 속으로

-북극허풍담 - 차가운여인

-보헤미안 랩소디

를 읽었다.

김영하의 보다는 그의 팟캐스트의 에피소드 처럼 쉽게 쓰여진 책 같았고, 차가운 공기 속으로는 일본 출장을 앞둔 마음으로는 읽기 불편했고, 북극허풍담은 가장 재미있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무슨 상을 받은 소설이라길래 샀는데 읽다보니 그저그랬다. ‘한국 소설엔 왜 성애묘사가 꼭 한번씩 나오는걸까? 작가가 판사여도 별반 다르지는 않구나’ 라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저그랬던 이 소설의 도입부에 옮기고 싶은 구절이 있어 옮긴다.

대체 누구의 말이 맞을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두처럼 맴도는 질문이다. 법정의 왼쪽에 앉은 사람들과 오른쪽에 앉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과연 그들이 같은 사건을 겪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괴리가 크다. 진실은 그 사이 어느 지점에 있겠지만 그 지점을 정확하게 찌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판사가 되기 전에는 셜록 홈즈처럼 증거를 놓고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따져보면 누가 참말을 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가려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용의자는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증인의 기억은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편집되어 있으며 과학이 밝혀주는 범위는 제한적이다.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다.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선이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악이 되기도 한다. 합법인 행동이 악이고 위법인 행동이 선일 때도 있다. 한 사람이 선과 악을 번갈아 저지르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법정에 온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선의 영역에 있음을 선포해달라고 한다. 이 사건에서도 같은 피고인을 두고 검사는 아버지의 은혜를 살인으로 갚은 패륜아라고 규정하는 반면 변호인은 열등감 많은 아버지로부터 학대받아온 가여운 피해자라고 부른다.

많은 사건에서 어느 쪽이 선이고 악인지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나는 나 자신이 선인지 악인지조차 모른다. 나의 내면 밑바닥에는 작은 법정이 있다. 그곳에서는 삼십 년 된 나의 인생을 둘러싸고 악이라며 고발하는 검사와 선이라며 옹호하는 변호사가 날마다 열띤 공방을 벌인다.

속아도 꿈결

토이 4집

바보같은 꿈을 꿨어 우리만의 집을 짓는 꿈을. 토이 4집을 듣다가 그의 이십대 초반에 적힌 가사인가 싶어 찾아봤더니 1999년, 71년 생인 그가 내 나이때 발매한 앨범이구나.

Enter Pyongyang from JT Singh on Vimeo.

아름답고 평온하지만 한편으론 기이하다

해무를 보았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영화라 지워버리고 싶은데, (박유천이 아니어도) 마음속에 끈끈하게 남아있다. 문득 요나의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의 구절이 생각난다; 작가로서의 출발점은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요? 반항심입니다.

카메라 워리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적당히 괜찮은 취미같다. 하지만 그걸 만드는 건 고역이라고 생각한다. (때론 보는 일도 고역이다.) 마지막으로 다큐를 만든다고 설쳤던건 대학교 3학년 제작실기때 졸작을 만든 일이다. 완성물을 뱉기는 하였으나 그 경험 이후로는 다큐멘터리를 위해 카메라를 들 엄두는 나지 않는다. 잘 만든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 추진력과 끈기에 놀라곤하니 나는 제작을 ‘안’하는게 아니라 ‘포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기도 바쁜데 그걸 찍을 정신이 어디있냐고 말했지만.
92년에 시작되어 2004년에 완성된 송환을 보았다. 정치든 이념이든 나랑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여기지만 공작원의 전향과 비전향 이야기라니. 나랑은 정말 상관없을 이야기라니 살기도 바쁜데 그게 다 뭐냐…며 외면했던 영화. 게다가 학생들한테 보여주기엔 이야기의 스케일과 그 주제가 무척이나 동떨어진 것이지만 김동원 감독의 작품을 하나정도는 다시 보아야 2학기 다큐멘터리 수업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DVD를 꺼냈다. 영화에는 ‘비전향장기수는 어떻게 그 오랜 고독과 고문 공포를 이겨내며 저항할 수 있었을까?’ 라는 질문이 나온다. 보통사람이라면 단 몇 일, 아니 단 몇 분도 못견뎠을 전향공작을 이겨낼 수 있었던 이유를 물으면 그들은 민족을 위해서라고 대답하곤 한다. 전향서 한장 쓰고 나와서 임무수행을 하는편이 낫지 않냐고 물어도 대답은 같다. 하지만 그들이 전향공작으로부터 지키려고 한것은 단지 민족주의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버틴 힘도 사회주의에서 나온 것 만은 아닐 것이다. 이념이란 결국 인간 이성의 일부요, 이성또한 인간의 여러 속성중에 하나에 불과할 뿐아닌가. 감독은 그들이 버틸 수 있었던 그 힘은 전향공작의 그 폭력성에 있다고 했다. 전향공작을 당하면서 자신들이 저항해야하는 정당성과 저항할 수 밖에 없는 힘을 주었을 것이라. 폭력으로 일구어낸 전향서 한장으로 사람의 생각이 바뀌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 하지만 전향과 비전향은 종이한장의 차이는 아닐 것이다. 전향을 한 사람들은 신념마저 팔아버린 인간이라는 자괴감아래서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하여 90년대 학생운동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한 비전향장기수들은 다르게 보면 임무에 실패하고 오랜 옥살이 말곤 딱히 이룬 것도 없는 고집불통 노인네들 아닌가. 2000년대 들어 북한의 극심해진 식량난에 대한 보도를 외면하며 무조건 미국의 탓만 하는 그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아보인다. 남쪽 출신으로 인민군에 지원했다가 아버지와 형이 몰상당하고 한 가정이 파탄이 난 장기수의 이야기는 이게 무슨 추찹한 똥고집인가 싶다. 똥고집2는 김동원감독의 카메라 고집이다. 김동원 감독이 형사에게 수색을 당한 것을 보면서 수십년동안 ‘생활의 유혹’을 이기는 이 아저씨의 미련한 카메라 고집은 어디서 나오는건가싶다.
김동원 감독이 ‘선생’이라 부르던 장기수들은 615공동선언이 있었던 2000년 9월 판문점을 통해 환송되었다. 어떤 이는 송환 직전 남한에서 가정을 꾸렸고, 어떤 이는 체제선전의 도구로 활용될까 걱정하여 북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선생은 환송/비환송을 고르라는 주문에 그 한 가운데에 표시해달라고 하였다. 고향으로 돌아간 선생들 앞에 국군포로가족과 보수단체의 반발은 거세었고 역시나 북한에서는 이 선생들을 체제선전의 도구로 활용하였다.
나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북한을 달나라보다 더 가기 어려운 곳으로 여기며 살고있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나에게 그곳은 언제나 무서운 비상식의 나라이다. 가고싶진 않지만 궁금한 나라. 북한에도 사람은 산단다. 또 그 이야기를 찍어오는 대니얼 고든같은 사람도 있단다.

그리고 유난히 맑은(것 같은) 오늘 밤

얄궂다! 습한 더위에게 주먹으로 얻어맞는 것 같았는데 태풍 한방에 더위가 물러나니 아쉬운 기분마저 들다니